한국 도자기를 생각하다 – 이수경 작품 세계에 대한 명상

데이빗 엘리엇, 독립 큐레이터

 

                    “아름다움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름다움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지상에서 아는 전부이자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1]

 

존 키츠는 위에 인용된 시구에서 예술 – 이 경우에는 가상의 고대 그리스 도자기 – 로 형상화된 덕목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진실’에 대해 논하고 있으나, 사실 이 구절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만 적지 않은 논의와 분분한 해석을 낳기도 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키츠의 시에서 이수경의 작품 세계의 토대가 되어 온 근본적인 이분법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경우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 이나 ‘진실’의 정의에 관한 것이기보다 이 두 가지 개념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물 혹은 맥락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 이수경의 창의적인 발달 과정은 미학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도덕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다만 그 목표는 언제나 새로이 생성되는 와중에 있기에 결코 완전히 파악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다. 진실성은 납득하기도, 추구하기에도 쉬운 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수경은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작업을 《파라다이스 호르몬, 2008》에 도달하기 위한 탐색에 비유한 바 있다.[2]  

 

키츠의 시에 응답하듯이, 그녀의 대표적 작품이자 현재까지 진행 중인 작업 <번역된 도자기 Translated Vase, 2002/2006->는 2001년 처음 구상된 이래 전통적인 도자기 – 이 경우는 한국의 도자기이지만 – 를 매개로 작가가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행위의 무대로서 기능해 왔다. 설치와 교환, 영상과 오브제가 제멋대로 뻗어나가듯 연쇄적으로 확장하는 이 작품들은 이행(移行)과 전환, 문화간의 차이 그리고 화해에 대한 은유로 작용해 왔다. 작품들이 연상시키는 이미지 또한 서로 다른, 대립하는 형태를 띤다. 예컨대 우아한 곡선과 백자의 매끈한 표면 질감은 여성의 신체를 떠올리게 하지만, 균열하거나 깨진 도자기 파편을 엉성하게 재구성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고통과 역경 – 그리고 치유 – 을 암시하기도 한다. 한편, 키츠의 경구가 시사하는 균형이 보다 단순하고 대칭적인 세계에 대한 은연한 욕망의 표현이듯,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수경의 작업에서도 키츠의 시에 등장하는 유기적인 분열과 성찰이라는 모티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수경은1992년 서울과 도쿄에서 개최된 첫 번째 개인전 《나와의 결혼 Getting Married to Myself, 1992》을 통해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과 더불어 분신으로서의 ‘작가 이수경’에 대한 필요성을 초기부터 표하기 시작한다. 이 모순적인 사랑은 어린 시절 이수경이 자라온 환경에서 잉태됐다. 서울에서 자란 그녀는 늘 바쁘게 일하는 부모님 밑에서 홀로 지내야만 했고, 외로움과 싸울 용기가 필요했다. 결국 이수경은 드로잉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세계와 자아를 창조해 냈다. “다섯 살 무렵, 나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마치 내 업보인 듯이 말이다”.[3] 불교 가정에서 자란 이수경은 부처의 가르침에서 큰 영향을 받았으나, 여전히 진행 중인 <가장 멋진 조각상 The Very Best Statue, 2006-> 연작이 시사하듯, 그녀는 조직화된 종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4] 

 

모든 결혼이 그렇듯이 그녀가 걸어온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인간 이수경이 자신의 믿음직한 도플갱어인 작가 이수경의 안내 하에 온 열정을 다해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여정은 새로운 시도와 실수, 자기 발견, 타인에 대한 인식과 개안(開眼)으로 점철된 길고도 먼 길이라 할 수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는 단테와 같이 예술은 그녀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순례하고 관찰하여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을 얻도록 이끌어 주었다.  

 

1963년생인 이수경은 한국에서 최초로 주목을 받으며 부상했던 1세대 여성 작가 및 큐레이터 집단에 속한다.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양의 모더니티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한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으나, 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5]와 결부된 만큼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근대’ 미술은 고전적인 회화의 진화 혹은 민속 미술의 정교화에 한정되었다. 한국 전쟁(1950-1953)이후 국가는 분단되었고 중국과 소련은 북측에, 미국은 남측에 각각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반쪽이 된 나라 모두가 고삐 풀린 군사 권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1950년대 남한의 문화는 프랑스로부터 연유하여 미국과 일본으로 퍼져 나간 ‘국제적’ 추상 미술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6] 많은 이들이 이를 예술로 가장한 제국주의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 백남준(白南準, 1932-2006)과 이우환(李禹煥, 1936-) 같은 작가들은 작품 활동을 위해 모국을 떠났으나 국내 미술계는 국제주의 양식의 허울 좋은 보편주의와, 1980년의 계엄령 선포와 광주 학살 이후 규합한 민중 미술 운동의 좌파 포퓰리즘으로 양분되었다. 이러한 완고하고 쉽사리 해소될 길 없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상황 속에서 개인 차원의 탐구와 솔직한 자기 비평 그리고 반성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듯 보였다. 진실도 아름다움도 발 디딜 틈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수경의 작업과 작가로서의 성숙 과정은 동세대 다른 작가들 대다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로 이러한 교착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

 

이수경은 1989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에서 석사를 마쳤으나, 작가 스스로 강조한 바 있듯 이 시기 ‘어떤 교수도 나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예술의 아방가르드적인 모델을 찾는 데 한참 심취해 있을 때조차도 그녀는 “백남준의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이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로부터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고 단호히 말한다.[7] 그즈음 그녀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대중 문화의 요소들을 작품에 접목시키는 작업으로 알려진 설치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제작자인 최정화(1961-)였다. 이수경은 “많은 젊은 작가들이 최정화의 집에 모이곤 했다. 그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 실험 영화와 최신 예술 서적 그리고 잡지들을 공유했다. 나는 현대 미술을 학교가 아닌 그에게서 배웠던 건지도 모른다. 1990년대에 그는 수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이수경은 회상한다.[8]    

 

사실 이 시기는 이수경에게 있어 혼란의 시기였다.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의 주요 작품이었던 벌거벗은 채, 와이어로 두른 갑옷을 입고 회전하는 예비 신부의 모습을 한 인형이 이수경의 당시 심리를 보여 준다. 같은 전시에서 이 신부 인형은 벽에 고정된, 복잡하게 얽힌 소용돌이 무늬 유리판 안에 가두어져 있었다. 그 이후에 제작된 작품에서도 이수경은 일면 냉소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이 환상, 즉 덫에 갇힌 여성의 환상을 모티프 삼았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 와이어를 사용해 세련되게 재단한 <갑옷 Armor, 1993>과, 화려하게 장식됐지만 절대 신을 수는 없는 하이힐을 다룬 <하이힐의 죽음 Death of High-Heels, 1993> 같은 작품들은 일상의 고통들을 암시하는 듯했다. 이후 이수경은 남편의 직업 관계로 1990년대 초반에 뉴욕으로 이주하여 2년간 미국에서 거주하였고,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서 얼마간 작품 활동을 중단 하였다.

 

1996년 한국에 돌아온 이수경은 사랑과 결혼, 함정과 욕망을 다룬 잔인한 예술적 동화와 같은 작품을 계속해서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예전보다 신랄한 면모를 지녔다. <백설공주 뒤집기 Snow White Revision, 1995>는 ‘보석 박힌’ 공주 왕관 안쪽에 풍선껌을 붙여 넣은 작품인데, 이 부분의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또 <21세기의 여왕 Queen of the 21st Century, 1996>에서는 못난이 자매가 입었을 법한 살빛에 가까운 분홍색 실크 재킷 두 벌이 벽에 부착된 옷걸이에 걸린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러한 작품 경향은 <손톱 꽃 Nail Flower, 1996에서도 드러나는데, 마녀 같은 여왕의 기다란 인조 손톱을 이어 붙여 만든 ‘연꽃 송이’가 소변으로 반쯤 채워진 와인 잔 위에 아슬아슬하게 얹혀져 있다. 이러한 위협적이고 초현실적인 작품은 아름다움과 역겨움을 동시에 표현한 일종의 몽타주이다. 이보다 더 두서 없는 작품은 바닥에 던져진 작은 인형들과 녹화된 이야기, 그리고 관객을 위해 마련된 의자들로 구성된 <먼 길 이야기 Story of Munkil (long journey), 1992>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제시되는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도 도덕적인 결말도 제공하지 않으며, 그 반대로 폭력적이고 냉소적이며 아이러니한, 그리고 결코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증폭된 동화의 잡탕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Green Shoe Tribe, 1998>은 뉴스 매체와 사이비 인류학의 패러디인 동시에 감각적인 혼란과 개념적인 방향 상실에 대한 일종의 소론으로서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텅 비다시피 한 공간에 설치된 이 작품은 같은 장소에서 앞서 제작되었던 만화풍의 폭력적인 드로잉들을 슬라이드 환등기를 통해 영사한다. 뒷 배경에서는 뉴스 앵커를 연상케 하는 정체와 근원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그 목소리는 모두가 초록색 신발을 신기로 유명한, 오늘날 북아메리카나 알래스카 지역에 거주하는 토착민들 혹은 독일의 작은 마을과 한국의 ‘초록 신발 부족’의 조상들로 추정되는 유목민들을 발견한 사건을 ‘보도’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눈속임에 가깝다. 공원이 내다보는 창문은 알고 보면 확대 현상한 사진에 불과하고, 그 안에 담긴 전망은 사실 사진 반대편에 있는 진짜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의 이미지일 뿐이다. 모두 허위일 뿐, 실체란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 작품 어디에도 진실 또는 아름다움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작가-여성-아이를 소재로 한 끔찍한 악몽은 점차 소화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현실과 재현을 맞부딪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투박한 방식을 선택해 제작한 설치 작품 <Elephant Rescue Team, 1996>에는 화염에 휩싸인 험악한 코끼리를 그린 작은 그림이 벽 높은 곳에 걸려 있다. 그림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그 앞에 놓여 있고, 사다리 밑에는 그림 속 불을 끄기 위해 가져다 놓은 듯한 물이 든 양동이들이 늘어서 있다. 이 작품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이수경의 작품 중 처음으로 불의 모티프를 도입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불은 파괴적인 요소였으나 – ‘모두 불태워 버리기 위해 불을 그렸다’ – 10년 후에 제작된, 2006년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진행중인 연작 <불꽃 Flame, 2006->을 보면, 불은 다른 종류의 에너지, 말하자면 정화와 생성의 원천으로 변화된다.[9]

 

<미니 마우스 사진 Colour Blindness Test for a Blind Minnie Mouse, 1998>은 보기 드문 이수경의 퍼포먼스 작품으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가 1965년 선보인 획기적인 액션 작업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 1965>의 패러디로서 애초 구상되었다.[10] 후자에서 보이스의 팔에 안긴 박제된 토끼가 진심 어린 상상력의 필요성을 낭만적으로 역설하고, 그의 머리를 뒤덮은 꿀은 자연과 치유, 생명력을 지닌 물질을 상징했던 반면, 이수경의 작업에서는 어떤 위안도 찾아볼 수 없다. 퍼포먼스에서 이수경은 미키 마우스의 아내이자 월트 디즈니사(社)의 부차적인 캐릭터인 미니 마우스를 팔에 안고 있다. 그러나 단추 눈이 뜯겨 나간 미니 마우스는 반소경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입이 없는 헬로우 키티 인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인형을 불구로 만드는 이러한 의도적 훼손은 사람들에게서 ‘귀엽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눈이 없는 가상의 존재에게 시행할 색맹 검사를 고안해 내고, 역으로 작가 본인의 감긴 눈꺼풀에는 만화에서나 볼 법한 크고 매력적인 눈을 그려 넣은 채로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이수경은 오랜 시간 남성 거장들이 장악해 온 미술계의 부조리한 권력에 도전하는 동시에 여성은 여전히 무시당하고 평가절하되는 현실을 드러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젊은 여성 작가들이 자신들을 위축시킬 뿐인 ‘귀여움의 문화’에 가담하고 있으며 자진하여, 그리고 때로는 유혹적인 태도를 취해가면서까지 자신들을 가두는 철창을 기꺼이 포옹하려 드는 상황을 꼬집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퍼포먼스를 갤러리가 아닌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선보임으로써, 이러한 실정에 대한 자신의 격분과 혐오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시기 이수경은 수많은 타협과 양보 끝에 예술이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은 아닐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술 공간 속에서 길을 잃은 그녀는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이때 ‘낯설음’이 이수경의 예술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되는데, 그녀에게 낯설음이란 언캐니uncanny와 외계, 그리고 타자와 연결되는 폭넓은 개념이다. 애초 주변인으로서 시작한 그녀는 여전히 바깥에 있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다름’ 혹은 차별성의 감각은 강인함을 심어주는 동시에 아쉬움의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 이 상반된 경향은 그녀가 지속적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하나의 주제를 형성한다. <순간 이동 연습용 그림 Painting for Out of Body Travel, 2000-2002>은 예술의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는 일종의 관문으로서 구상된 작품으로, 1960년대 개념∙지시 미술에 대한 부분적 패러디로도 이해할 수 있다.[11] 어디에선가 찾은 키치한 풍경화를 가져다가 반으로 자른 후에, 수평 길이를 조정할 수 있는 흐릿한 색줄로 반절 난 그림 속 육지와 해안선, 바다, 수평선과 하늘을 이음으로써, 즉 구상적 요소와 추상적 요소를 한데 혼합함으로써, 이수경은 관객이 또 다른 현실로 자기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기구를 창조해 냈다.[12] 이수경은 작품의 정확한 감상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지침을 작성하였다.

 

               “긴장을 풀고 그림의 중앙을 어지러워질 때까지 바라보세요 (...) 매일 연습하면 언젠가는

                서로 떨어진 그림의 양쪽이 하나로 합체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순간 이동을 하여 그림과 똑같은 풍경 속에 착륙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림 속의 폭포나

                강 위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순간 이동 연습용 그림을 바라볼 때는 언제나 헬멧, 보호대,

                그리고 구명조끼를 꼭 착용하기 바랍니다”.

 

 한편 <USO 미확인 서울 물체 2004 (Unidentified Seoul Object 2004), 2004>에 등장한 소녀는 훨씬 치명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이 설치 작품은 도심 위를 낮게 날아 지나치던 UFO에 납치되고 만 소녀를 ‘추모’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녀가 납치된 직후, “UFO의 표면에서부터 서울의 아름다운 빌딩들이 곰팡이처럼 번식하기 시작하고 그것은 마치 순교자의 후광인 것처럼 보인다(...)” [13]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이라곤 옷과 시계 그리고 반쯤 먹다 만 초콜릿뿐이다. UFO는 소녀를 데려감으로써 USO, 즉 미확인 ‘서울’ 물체로 변환되고, ‘시간은 멈추고 공간의 표면은 찢겨 나간다’. 천연덕스럽지만은 않은 얼굴로, 작가 이수경은 자기 자신의 실종을 이 작품을 통해 선언한 셈이다.

 

이수경 본인이 이 시기 자신의 마음 상태를 ‘부정적이고 냉소적’이었다고 표현한 것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결국 그녀는 자기 작품에 드러난 예술에 대한, 자신에 대한, 사회에 대한 불만족을 분석하고 그러한 요소들을 최대한 걷어 내는 작업을 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날이 변화하는 감정에 주목하되 보다 긍정적이고 생성적인 방법으로 그 감정들을 실체화하기 시작했다.[14]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의 철학과 만다라 테라피라는 정신분석에 기반한 심리 치료법(매일 만다라 이미지가 포함된 그림을 적어도 한 개 이상 그려야 하는)에 영향을 받아, 그녀는 자신의 드로잉 작업을 확장해 여러 가지 오브제, 대개 흠집이 나 있거나 상처를 입은 것들이기는 해도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을 지닌 오브제들을 만들기 시작했다.[15] 또한 이 시기 들어 학생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철학서를 다시 들추어보며, 보다 심도 있게 그의 사상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니체가 진실의 가치와 객관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들에 집중했다.[16]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업보를 의미하는 라틴어 ‘운명애amor fati’, 즉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정신을 끌어들여, 니체는 38세의 나이에 다음과 같이 바람을 표현한 바 있다.

 

               “사물에 있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한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 나는 언젠가 오로지 긍정만 하는 자가

               될 것이다!”[17]

 

이수경이 비록 그것에 대해 완전히 인식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녀 역시 같은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정신과 육체를 합치고 싶었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보다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18] 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작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연작 <번역된 도자기>의 첫 번째 작품인 <번역된 도자기 알비솔라 Translated Vase Albisola, 2001>는 위에서 언급한 전환을 이루어 내는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주요 도자기 생산지인 알비솔라에 머물며 레지던시에 참여하던 중에 이수경은 도공인 안나 마리아 파체티와 만났고, 그녀는 이수경의 지도 하에 18세기 조선 시대 양식의 백자 12개를 제작하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19] 파체티는 이수경이 설명해 준 것 이외에는 한국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으나, 이수경은 도자기와 관련된 시를 번역하여 파체티에게 낭독해주었고[20] 파체티는 이에 근거하여, 또한 수 세기에 걸쳐 유럽 도자기와 도공들에게 영향을 미쳐온, 내면화된 아시아의 정서를 바탕 삼아 비물체화와 체현의 순환 과정에 참여하였다. 그것은 도자기를 텍스트로 옮기고, 그것을 또 번역된 텍스트로 옮기고, 이어 변형과 체화를 거쳐 종국에는 다시 도자기로 재현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혼성 과정을 거쳐 제작된 도자기는 질적인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우며 작가에게도 관객에게도 별 만족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본인부터가 전통적 한국 미학의 엄격한 규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이 도자기들의 묵직한 무게와, ‘재고 정리 세일’이라는 큼직한 배너와 함께 그것들이 전시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작가가 동양 미술의 교묘한 모방만을 염두에 두었다고 결론지을 수도 없다. 어찌 되었건 이수경에게는 최종 결과가 아닌 제작 과정 자체가 이 작업의 핵심이었다. ‘12개의 도자기는 가상의 이웃 간의 일시적인 만남의 흔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개의 이질적인 문화를 종합하려는 시도도, 후기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의 문화 교류를 나타내려는 시도도 아니고, 다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유효할 수도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는 지역적 고정 관념을 한데 엮어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21] 그러므로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터득하는가의 문제는 관객의 관점과 배경 지식에 달려 있다.

 

이것은 곧 작가가 자신의 권한 혹은 통제력의 일부를 일시적으로나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개인적인 과도기에 있던 이수경에게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 미술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일깨웠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한편으로 그 과정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탐색의 일부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난250여 년간에 걸쳐 지속되어 온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위협 받고 있는 오늘날의 광범위한 사회 정치 경제적 변화와도 연관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지역별 미학 체계가 모더니티와 동시대의 불완전한 메타-서사 속으로 통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비록 이것이 주류의 비평계에서도 예술 시장에서도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성사되지 않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시아(그리고 소위 ‘비서구’라 불리는 다른 지역들)의 많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수경은 자신이 속한 문화의 미학적 전통을 더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고, 현대 미술가로서 이러한 전통을 자신의 작품과 어떻게 접목시킬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오늘날 제작되는 전통 도자기는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지던 도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자기 장인들은 도예 마을에 거주하면서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계승,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제작된 도자기 중 상당수가 파기되고, 그 깨진 파편들은 가차 없이 내버려진다. 이수경은 <번역된 도자기> 연작의 다음 단계에서 이러한 전통 도예 마을의 공방을 방문하여 최고의 장인들이 버린 도자기 조각들을 수집했고, 그 조각들을 사용해 전혀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작된 작품들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거대한 것까지 크기가 매우 다양한데, 이것은 어떤 규격으로도 제작이 가능한 알루미늄 재질 틀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에폭시 레진을 사용해 이어 붙인 파편들은 기이하고 때로는 익살스럽기도 한 바로크적 몽타주를 형성하고, 파편들 사이사이의 틈새는 흠집 난 도자기를 땜질하던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24캐럿 금으로 메운다.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종종 서양의 고전적인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띠는데, 고전 조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올곧은 자세 대신 뒤틀리고 왜곡된 모습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아예 만화 캐릭터를 닮은 작품들도 있다. ‘미키 마우스의 귀’, ‘도널드 덕의 부리’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요소들이 툭 삐져 나오거나 표면에 혹처럼 달렸다.

 

그 외에도 이수경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작품을 참조하고 인용하는데, 한스 벨머(Hans Bellmer, 1902-1975)의 사지가 잘리고 관절이 뒤틀린 소녀 인형들에서부터[22] 박살 나고 뒤섞인 도기 파편을 관객들이 주어 모으도록 하여 화해와 치유의 행위를 촉구하는 오노 요코(Yoko Ono, 1933-)의 <조각 이어 붙이기 Mend Piece, 1966>와 같은 판이하게 다른 참조점이 <번역된 도자기>라는 연작 속에 나란히 아우러져 있다는 사실에서 그 다양성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괄목할 점은 이수경의 도자기 작품들이 지닌 엉성한 우아함과 유기적인 확산, 그리고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여 자기 복제를 계속해 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다. 더욱이 작품들의 대부분은 적지 않은 무게에도 불구하고 비누방울처럼 가벼운 인상을 주며, 낱낱의 요소가 모여 일체화된 구조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세포 분열과 증식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23] 크기가 제각각이라도 환상적인 요소와 유머 감각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이 작품들은 한국의 전통 미학이 지닌 순수함과 균형을 재고하도록 만드는 한편, 관객에게 작가의 아이러니한 자화상을 제시한다 – 설사 그 모습이 우리의 예상과 다를지언정, 강인하고 자신이 넘치며 새로운 방향에 대한 확신을 품게 된 작가 자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수경의 도자기 작품은 드로잉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시기 이수경은 18세기 조선 회화의 간결한 붓 선을 사용하여 이전부터 지속해온 만화와 같은 드로잉 작업들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여기에 전통 불교 미술뿐만 아니라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의 모티프들을 혼합하였다.[24] <불꽃 Flame, 2006>(도7)은 2006년에 제작한 드로잉을 닮은 회화 연작으로 한지에 경면주사를 이용하여 그린 것이다. 경면주사는 적갈색의 천연 광물 안료로, 풀과 섞어 약재로 쓰거나 종교적 목적, 특히 무속 신앙과 불교의 부적을 그리는데 이용되었다. 이수경은 <불꽃> 연작을 ‘드로잉보다는 흔적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작업을 할 때도 매일 같은 시간에 시작해 명상에 가까운 상태에 접어들 정도로 작품에 몰두한 채 차근차근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고 한다. 초기의 작품들에서 불꽃은 열정에 대한 은유 혹은 중심으로부터 뿜어 나오는 에너지에 대한 은유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구체적이고 다양한 형상과 모티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번역된 도자기> 연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들에도 무의식적 요소가 저류에 흐르고 있다. 여러 이미지들이 종이 위에 물결과 여백과 교차점을 만들어 내면서 뒤섞이고 겹치고 합쳐지는 모습에서 그러한 영향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의 메시아적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작가가 문자 그대로 선견자 – 심오한 진리를 파헤치고자 하는 자 – 로 변하는 순간이 온다. 이 작품들 속에 재현된 이미지와 형상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영적인 전통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수경은 우는 여인의 모습과 운명에 유독 주목한다. 이 여인은 작가와 신부 그리고 성인의 이미지가 혼합된 혼성적 인물인 셈이다.[25] 이러한 회화 작품 및 관련 드로잉들은 작가가 자신의 사고와 감정, 기억과 꿈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탐구할 수 있는 일종의 시험대 역할을 한다. 인내심과 아량을 재어 보고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더 나아가 바깥 세계와 더 친숙하게 관계 맺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이자, 자신의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미완성 연작인 <가장 멋진 조각상> 그리고 <앱솔루트 제로 Absolute Zero, 2008>(삽도14)와 같은 작업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 몽타주 기법과 이수경 특유의 비판적 사고방식은 이러한 과정에 성상 파괴와 더불어 해학적 요소를 주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녀는 초월적인 아름다움, 어쩌면 구원으로도 이어질지 모를 아름다움이 그 존재를 명백히 드러내기 전까지는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한 자세보다는 유머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009년 이후 이수경 작업의 주된 주제로 등장한 테마는 정화(淨化)인데, 이는 결국 소리와 움직임을 이용한 공간의 개조와 정화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사실 그녀가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한국 무속 신앙과 전통 음악에 심취하게 되면서부터다. <조국과 자유는 Mother Land and Freedom Is, 2009>은 전 국군 기무 사령부 자리, 즉 기무사 터에서 열린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향후 국립 현대 미술관이 설립될 공간이지만 옛 기무사 건물과 터에 대한 인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식민지 시절에는 일본 국군 병원으로, 해방 후에는 국군 기무 사령부로 사용되면서 지하에서 많은 이들이 고문을 당하고 군부의 쿠데타 모의 장소로 악명을 얻기도 했다. <조국과 자유는>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국군 기무 사령부의 군가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수경은 이를 한국의 전통 궁중 음악인 정가(正歌)의 형식으로 탈바꿈시켜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녀는 동종 요법의 원리와 풍수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여 기무사 터를 오랜 시간 장악해 온 부정적인 양(남성)의 기운을 ‘무한한 음(여성)의 기운으로 증폭시키는 가구’를 통하여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부지에서 발견한 낡은 군복 무늬 손수건과, 손수건 중앙의 상징적인 문양을 닮은 다수의 기하학적인 드로잉들을 액자에 끼워 넣은 뒤, 이수경은 방과 방 사이 문지방에 단순한 나무 지지대를 하나 세우고는 그 위에 군복 무늬를 연상케 하는 무지갯빛 진주층과 양은 그릇을 사용해 만든 기하학적 오브제를 조심스레 올려 놓았다. 여기에 그 장소에서 앞서 녹음해 두었던 여성의 목소리가 배경 음으로 깔렸다.

 

건축과 퍼포먼스, 비디오 기록 작업인 <언약이 늦어지니 While Our Tryst Has Been Delayed, 2010>와 춤과 소리 퍼포먼스 그리고 비디오 기록 작업인 <휘황찬란 교방춤 Dazzling Kyobangchoom, 2011>에서는 소리, 특히 음악은 공간을 비물질화하고 정화하는 중요한 방법적 요소로 부각된다. 정가를 발견하고 다른 한국 전통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녀의 작업도 이런 방향으로 옮겨갔다. <언약이 늦어지니>는 서양식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공연되는 궁중 음악을 듣고 작가가 느낀 불만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이수경은 젊은 예술가인 정마리의 순수한 음색에 도취되어 궁중 음악에 열정을 느끼고 영적인 감흥을 받아 새로운 무대를 디자인하기로 결정했다. 백색의 공명판에 다름 아닌 이 새로운 무대는 소리를 객석으로 몰지 않도록 설계되었기에 궁중 음악의 소리와 정서를 감상하기에 적합했고, 악기와 스피커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오롯이 정마리의 목소리만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26] 특별히 디자인된 흰색 한복을 입은 정마리는 텅 빈 백색 공간을 실체 없이 부유하는 것처럼 보였고, 목소리 이외에는 그녀를 지탱하는 그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갈망과 욕망, 짝사랑의 애틋함을 노래하는 정가의 한 종류인 가곡을 불렀다. [27]   

 

한편 <회황찬란 교방춤>은 교방 살풀이춤 양식(두 종류의 전통 음악과 춤이 혼합된 것)을 따른 춤 퍼포먼스이다. 이 작품은 새로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서울역사, 이름하여 ‘문화역 서울 284’의 개관에 맞춰 제작되었다. 이수경은 이곳이 1920년대 일본 건축가들에 의해 지어진 중앙역사 자리임을 염두에 두고 일종의 치유 의식으로서 살풀이춤을 펼쳐 보였다. 교방은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여성 예인인 기생들이 거주했던 집을 일컫는 말이고, 살풀이는 대개 무당들에 의해 행해졌던 타고난 살(煞), 즉 악독한 기운을 쫓아내는 의식으로 <휘황찬란 교방춤>에 참여한 무용가 이정화가 쥐고 있던 것과 같은 하얀 손수건이 의식에 흔히 사용되었다.[28] 이수경은 이 작품을 계획하고 감독하면서 옛 기차역에서 사용하다 버린 샹들리에 조명들을 가져다가 자신이 직접 제작한 작은 팔각형 무대 위에 설치했고, 그 눈부신 불빛 속에서 무속 음악의 극적인 의식과 한국 전통 무용의 우아한 동작을 아울러 퍼포먼스를 완성했다.[29]

 

이수경은 가장 최근의 설치 작업인 <쌍둥이 성좌 Constellation Gemini, 2012>에서 퍼포먼스와 음악을 뒤로하고 다시 도자기와 조각 그리고 회화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수천 개의 청자 파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만다라의 형상으로 펼쳐져 있다. 그 외에도 <불꽃>  연작과 전통 불교 미술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의 합성을 바탕으로 실크 위에 그린 거대하고 대칭적인 착색화와, 자신의 일상 드로잉에서 가져온 기도 또는 명상에 잠겨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렌더링한 3D 사진도 볼 수 있다. 이수경은 이 일군의 작업 전체를 일컬어 ‘준종교적’이라고 설명하면서도,[30] ‘내 작업 방식은 아주 더디고 또한 반복적이다. 내가 작업을 계속하는 것은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가 어떤 작업으로 완성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는 동안 그 과정이 나를 변하게 하고 나의 생각과 신념을 바꿔 놓는다. 나는 나 자신을 바꾸고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작업을 한다’고 밝혔다. [31]   

 

이렇듯 다방면으로 작업을 진행해 온 이수경의 궤적을 보면서 임의적인 방향 전환 내지는 편의만을 고려한 선택 아니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수경의 여러 선택들에 내재된 동기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진실과 거짓은 서로 반대 지점에 있지만 둘 다 지속적으로 자기 복제를 해나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나는 미덕의 나선을 그리면서, 또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나선을 그리면서 각기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그러나 이 둘 중 오로지 진실만이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냉정(冷靜)하고 수정처럼 맑은 아름다움 – 대칭적이지만 예측 불가능하며 불규칙적이고 때로는 어설프기도 한 아름다움 – 을 속심에 간직한다. 이 속심을 매번 새로이 발견해야 하는 것이 이수경의 몫이다.

 

 

 

[1] 존 키츠,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시Ode on a Grecian Urn」, 『라미아, 이자벨라, 성 아그네스제 전야, 그리고 다른 시들The Eve of St. Agnes, and other Poems』, (1820년 1월)

 

[2] 2008년 5월 22 – 7월 20일까지 서울 몽인 아트 센터에서 열린 이수경의 개인전 제목

 

[3]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에서, 2012년 7월 13일

 

[4]이 조각 연작에서 이수경은 세계 각지에서 실시한 자체 설문 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공자, 노자, 성모 마리아, 예수, 부처, 가네샤 등 각기 다른 종교적 대상의 외형적 특징을 하나의 조각 안에 담아 매번 다른 작품을 완성시켰다. 성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 성인 또는 신의 신체적 특징과 의상, 자세 등을 설문지 항목으로 정해 설문 응답자들에게 각각의 항목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하게 한 후에, 응답자들의 선호도에 따라 그들의 구미에 맞는 <가장 멋진 조각상>을 제작하였다. 지금까지 4개의 조각상이 일본 에치고(2008), 한국 안양(2008), 영국 리버풀(2008), 우크라이나 키에프(2012)에서 제작되었다. 총 12개의 조각상이 완성되면 이 연작도 완료된다.

 

[5] 일본의 지배는 1910년 한일합병을 기점으로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6]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하여 벌어졌던 예술 사업들은 이러한 경향의 정점을 보여준다. 당시 제작된 작품 대다수가 소마 미술관(서울 올림픽 미술관)과 조각 공원에 수집되어 있다.

 

[7]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에서, 2012년 7월 14일

 

[8] 위와 동일.

[9]  Hunyee, Jung, Yeesookyung’s ‘Fire Works,’ Iris Moon (trans.), (Seoul: One and J. Gallery, 2006)

 

[10] Wie man dem toten Hasen die Bilder erklärt, (26 November 1965), (Dusseldorf: Galerie Schmela)

 

[11] 글로 쓰여진 지침서를 포함하는 지시instruction 미술은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한다. 개념 미술의 초기 형태인 지시 미술은 1960년대 초 오노 요코(Yoko Ono, 1933-)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Yoko, Ono, Grapefruit, (New York, 1964)

 

[12]그림의 한쪽 측면에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어 전시 공간에 따라 최대 5미터 넓이까지 말린 그림을 펼칠 수 있게 하였다.

 

[13]이수경, 작업 노트, 2004년

 

[14]필자와의 대화, 2012년 7월 15일

 

[15]이수경은 2004년도에 심리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16]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자이다. 이수경은 니체 사상의 궤적과 그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 변화의 상관관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7] Nietzsche, Friedrich, Die fröhliche Wissenschaft, (Germany, 1882), Williams, Bernard(ed) (trans.), The Gay Science, (Cambridge: CUP, 2001), p. 157

 

[18] 각주 8번을 참조

 

[19] 한국의 조선 시대는 1392년부터 1897년까지 지속되었다.

 

[20] 김상옥, 「백자부」, 『초적(1947)』. 도자기를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은유로 보는 이 시는 이수경의 도자기 작업(비록 균열과 봉합 또는 재형성된 도자기라 할지라도)의 근간을 이루는 정서와도 일맥상통한다.

 

[21] Yeesookyung in Laurie Firstenberg, “Waiting and seeing,” The 1st Biennale of Ceramics in Contemporary Art, (August 2001)

 

[22]독일 출생의 초현실주의 작가 한스 벨머는 가학-피학 성애 경향의 결박된 소녀 인형 조각들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23]이러한 증식 경향은 <번식 드로잉 Breeding Drawing, 2005> 연작에 포함된 그림 12점의 제작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연작은 반쯤 벌거벗은 여인의 도식적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 여성은 전형적인 머리 스타일을 하고 손에는 풍선 하나를 쥐고 있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이 드로잉을 좌우 대칭으로 복제하여 두 인물처럼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세 번째 드로잉에서는 두 인물이 네 인물로 늘어난다. 이와 같은 기하학적 자기 복제가 12점의 작품이 모두 완성될 때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24]여기에는 고려 시대(918-1392)의 불화(佛畵)에 ‘인용된’ 구절들도 포함되었다. 다양한 종교의 모티프들을 뒤섞어 인용하는 방식은 슈타이너가 제시한 인지학적 접근과 상응한다.

 

[25]예술가와 현자, 예언자를 종교적 색채 없이 세속적으로 묘사한 이수경의 작품은 인도의 시인이자 작가 그리고 화가였던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불가사의한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26]<언약이 늦어지니>와 함께 감상하면 좋은 설치 작품이 또 다른 층에 동시에 전시되고 있었다. 이수경의 일상 드로잉 176점이 벽에 걸린 전시 공간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성모애가’가 흘러나오면서 증폭된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성했다. 이 노래 역시 정가 형식으로 정마리가 불렀다. 증폭기가 사용되지 않은 1층의 백색 무대와 달리, 이 공간에서는 벽 안쪽으로 설치된 스피커가 소리를 내는 미니멀리스트 오브제 혹은 ‘회화’ 작품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27박희서가 쓴 <언약이 늦어지니>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언약(言約)이 늦어가니 / 정매화(庭梅花)도 다 지거다 / 아침에 우든 까치 / 유신(有信)타 하랴마는 / 그러나 경중아미(鏡中蛾眉)를 다스려 볼가 하노라.

 

[28]일본의 지배 기간 동안 이러한 기생들의 연예는 일본 군대를 대상으로 하는 강요된 매춘 행위 수준으로 전락하였다.

 

[29]무속 의식과 신앙은 여전히 한국에 널리 퍼져 있으며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다른 주요 종교들과 겹쳐진다.

 

[30]필자와의 대화 중에서, 2012년 7월 15일

 

[31]미출간된 작가의 진술, 2012년 7월